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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흥종교를 색안경을 끼고 보나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6/11 [16:03]
블로그에서 본 종교세상

왜, 신흥종교를 색안경을 끼고 보나

블로그에서 본 종교세상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6/11 [16:03]

종교를 넘어서야 하는 까닭
 
세상에 뿌려지는 사랑의 많은 부분이 종교로부터 나온다. 고통 받는 세계의 어린이들과 난민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단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게 종교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종교의 가르침을 봐도 그렇다. 기독교는 사랑을, 불교는 자비를 설파하고, 이슬람교도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로 가르친다. 하지만 세상에 넘쳐나는 증오의 많은 부분 역시 종교로부터 나온다. 숱한 전쟁, 테러, 대량학살이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다. 그렇다면 종교는 사랑일까 증오일까.
 
우리 본성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즉 자비의 본능을 믿고 단련하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여기서 ‘자비’란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행동하는 마음이다.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을 찾아낸다면, 그 마음의 대상이 나와 같은 종교, 같은 민족으로 제한될 일도 없을 것이다.
웹진 <따시델렉, 록... blog.naver.com/rogpastory 작성자: ROGPA WEBZINE
 

왜, 신흥종교를 색안경을 끼고 보나  

한국에서 신흥종교하면 무조건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로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나 불교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교들은 역사적으로 검증을 받은 반면, 신흥종교는 역사가 짧아 사회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또한 신흥종교를 창시한 교주나 지도자들이 도덕적으로 사회적문제(재산갈취, 성폭행, 헌금 강요, 집단자살 등)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심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한 종교집단의 문제이지 신흥종교의 문제는 아니므로 신흥종교 전체를 부정적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 신흥종교는 기성종교가 경직되고 형식화, 부패 등을 개혁하려고 생겨난 경우가 많다. 
 
기성종교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흥종교를 무조건 비난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소망*사랑~ 생... blog.naver.com/mss3691 작성자: 늘푸른나무 

종교인도 도덕적 진리에 접근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판별해야 하는가? 신명론은 신의 율법을 참조하라 한다. 자연법사상은 이와 다른 대답을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시하는 ‘자연법’은 이성의 법칙이며, 우리에게 이성의 법칙을 이해할 능력이 있는 것은 자연질서의 창조자인 신이 그러한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성적 존재로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법사상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올바른 행위는 그것을 해야만 하는 가장 좋은 이유가 있는 행위라는 생각을 지지한다.
 
전통적 용어를 사용하면 도덕적 판단이란 “이성의 명령”(dictates of reason)이다. “이성의 명령을 비난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아퀴나스, 신학대전) 종교인들도 도덕적 진리에 접근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적 신앙은 무엇이 최선인가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도덕적 질문의 결과는 종교적으로 ‘중립적’이다.
k33770님의 블로그 blog.naver.com/k33770 작성자: 인아
 
나의 종교관과 사회생활
 
나는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현지교민들과 교류관계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인사도 안하는 그런 싸가지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 자랑할 여유도 없고, 타인의 돈 자랑을 받아 줄 아량도 없어서인 것 같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친한 척하면서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자칭 신자(?)들 등쌀이 지겨워서이기도 하다.
 
메히꼬의 재외교민들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다. 잘 모르는 사람도 인사를 나누면, 후렴처럼 이어지는 말이 자신의 종교단체에 나오란다. 처음에는 웃으며 정중하게 거절도 했지만, 어느 순간에 그게 고문으로 다가왔다.
 
내 평생에 악한 놈이 종교를 믿었다고 착해지는 경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잠시 악행이 잠잠해질 뿐인 거지. 이렇듯 이 종교, 저 종교 다 싫다 보니 외로운 외국에서 동포들과 어울리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종교인들 눈에는 내가 구제불능의 낙오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
MEXICO, PAIS QUE L... 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 작성자: 호세호세
 
양쪽 면을 보는 慧眼을 가져야
 
세상구조는 상대적 대립을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밤이 있으므로 낮이 있으며,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는 것이니, 이러한 성질을 양면성이라고도 하고 또는 이러한 끝을 양극단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것은 취하고 좋지 않은 것은 버리려 하는 게 마음구조이다. 좋고 나쁘고, 또는 옳고 그르고는 중심에서 보아야 한다. 언제나 중심에 서 있게 된다면 굳이 취하거나 버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감정에 치우쳐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다면 시각의 공정성을 상실할 것이다. 우리는 바른 것을 선이라 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악이라 한다. 이 또한 상대적 개념인 것이니 선만 취하고 악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느냐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은 옳고 무엇은 나쁘다라고 하는 것도 결국 한쪽으로 치우침을 의미하는 것이 되므로 중심에 서서 양쪽 면 또는 양 극단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근원의 빛 영성원 didakswn.blog.me 작성자: 송암
 
종교란 악을 행하면서도 선인이 되는 것이다
 
종교란 불가시적이고, 초자연적이고, 경이적인 그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이다.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 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종교란 사실 우리 자신보다 우월한 그 어떤 것과의 종속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신비스러운 욕망이다. 인간의 의지가 영혼의 불멸을 추구하는 한 종교는 존재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영생의 구체성을 확인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지혜에게 종교는 존재가치를 확고히 부여해 주어야 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새 blog.naver.com/mose16 작성자: 창랑포객

종교적 인간감정의 선은 붕괴됐다
 
내 주변은 그야말로 종교의 홍수 속에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치일 정도다. 집집마다 방문하다보면 현관문 앞에 천주교나 교회나 불교나 자신이 가진 종교의 마크가 붙어서 어떤 악의 집단이 침범해도 방어가 될 정도로 완전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감정은 흔들려도 신앙이란 중심이 버티고 있어서 누구든지 이성만큼은 바르게 지탱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내 기준의 잣대였던 것을 알게 됐다. 무신론자들만 세상의 더러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신앙 안에서 흔들림이 있어도 자신을 바로잡고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교와 외도는 별개라는 선을 가지고 산다. 종교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이성을 만나고 일요일마다 기도하러 간다. 종교와 인간의 감정의 선은 이미 붕괴되었다. 그래도 인간의 감정보다 종교의 신성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종교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자의 축복과 영광을, 그릇되게 사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나다운 삶 blog.daum.net/ootwo0218 작성자: 나다운 삶 
 
영화 ‘미션’, 종교의 순수성과 신념의 선택

 
이 영화 <미션>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가치는 순수한 종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속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권다툼에 의해 종교적인 본질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가톨릭의 상황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신부들은 죽었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고, 그들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것이라는 얘기는, 종교의 순수함과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치적인 행보를 하여야만 하는 종교 사이에서 종교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대사이기도 합니다.
 
탐욕과 폭력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직면해야하는 양심의 선택과 더불어 이 세상 속에서 본연의 기능을 발휘해야할 종교가 일부 사람들에 의해 그 순수성이 훼손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에 있어 이 영화 <미션>이 주는 메시지와 감동은 더욱 더 가슴속 깊이 다가올 듯합니다.
나만의 리뷰공간 blog.daum.net/ylsung94/75 작성자: 톨네코
 
위대한 종교의 척도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세상의 모든 종교는 처음에는 위대하게 시작한다. 기독교는 처음 사랑과 용서, 도덕적 뉘우침과 자아성찰을 가르쳤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에 대한 도덕적 배려, 자비 등을 가르쳤다. 이슬람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유교도, 선도도, 도교도, 원불교도, 심지어 저 원시 아마존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샤머니즘까지.
 
모두가 위대한 종교였다. ‘위대하다’는 것은, 그 종교들의 신 혹은 신들의 위대함 혹은 전능함을 척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위대함의 척도는, 그 종교로 인해 사람의 삶이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상적으로 충만해지고, 자신만이 아닌 타인과 나아가 세계, 우주를 배려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여 항상 선하게 살게 하는 것, 바로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였는가’ 만이 종교 평가의 기준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당신 종교의 가르침의 정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도덕적인 정신에서 비롯한 것인가. 아니면 맹목적인, 그저 천국갈 수 있다는 알량한 자본주의적 손익계산에 비롯한 것인가. 과연 당신 종교 창시자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는지, 그들도 과연 당신처럼 그렇게 했을지 생각해 보라. 신은 당신들을 용서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당신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별은 바라보는 자에... blog.naver.com/syaorang52 작성자: 헬카네스
 
종교 안에서 운명이 뒤바뀔 수 있을까?
 
일요일 오후 잠시 드라이브를 했다. 무작정 운전대를 잡았지만 말로만 듣던 신림면 용소막 성당에 들르게 되었다.
십자가를 보면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전에 나에게 “교회에 다닐 생각이 없느냐” 물은 적이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길을 평안히 잘 갈 것 같다고. 그때 많은 생각으로 주저했었다. 끝내 그와 함께 교회를 다니지는 못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선택해 그를 따랐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그와 나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종교….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종교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종교 안에서 운명이 뒤바뀔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없음에도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도와주실까?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
사 랑 해.. blog.naver.com/meika 작성자: 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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